[작성자] 허예진

안녕하세요, 오랜만의 업데이트네요.
5월 연휴 잘들 보내셨나요? 부처님 오신 날 연휴를 맞아 저는 고향 울산에 다녀왔습니다. 고향에 다녀온다고 하면 뭔가 지방색이 뚜렷한 특산품 같은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울산은 거대 공장이 둘이나 있는 공업 도시라 이렇다 할 특산품이라거나 문화재가 별로 없어요. 그래도 해안도시라 바다가 바로 옆이고, 경주까지는 30분 거리라 산으로 바다로 놀러 가기에는 좋은 조건이랍니다. 생각만큼 그렇게 삭막하거나 매연이 심한 도시도 아니예요.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집 뒷산의 조그마한 절에 다녀왔어요. 저희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라 초등학생 때부터 소풍으로 수도 없이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산에는 '환생사'라는 이름의 -굉장히 불교적이죠- 절이 있는데요, 산 깊숙이 있지도 않고 아담하여 어릴 적부터 자주 갔었던 곳이예요. 동네 사람들만 다니는 절이라 부처님 오신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붐비지 않아 자리 한 켠을 차지하고 절밥도 얻어 먹고 왔습니다. 아기 시절때 할머니 손에 자라며 몇 년 절엘 따라 다녀서 웬만한 절 문화에는 익숙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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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저는 절이 참 좋습니다. 한때는 비구니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요즘도 시간이 나면 템플 스테이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한가득인데 아직 한번도 해 보지 못했네요. 전통적 목조 건물이 주는 따뜻함과 더불어 섬세한 조각들과 무늬, 선선한 바람과 함께 울리는 잔잔한 풍경 소리에 향내까지 더해지면 '아- 여기서 살고 싶어'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버리고 맙니다.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도 마음 속이 복잡하거나 할 때 절을 찾아 가는데 특정 종교라는 것을 넘어 한국 전통 문화로써 정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템플 스테이를 하고 그 이야기도 이 곳에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산에서 내려오는 길 구석구석 피어 있던 꽃들입니다. 감자꽃, 아카시아, 방울꽃 말고는 안타깝게도 꽃 이름들을 잘 모르겠네요. 햇살에 비치는 꽃들을 보니 역시 5월이 좋기는 좋구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름다운 5월이 세상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같은 시간에 살지만 서로 다른 세상에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뭉개뭉개 피어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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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과 다니신 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네요.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시간이셨길...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2008.05.14 12:47 [ ADDR : EDIT/ DEL : REPLY ]
  2. 김지연

    서울은 정말 마음이 흐트러지기 좋은 곳이에요. 모든게 치열하고 복잡하고.. 저는 그런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평화로운 곳을 늘 찾으려고 한답니다. 5월 날씨 정말 좋은것 같아요. ^_^

    2008.05.18 23:50 [ ADDR : EDIT/ DEL : REPLY ]
  3. 템플스테이 좋은데요? 하반기 바스피아 MT를 템플스테이로 가는 건 어떨지? ^^

    2008.06.19 13:03 [ ADDR : EDIT/ DEL : REPLY ]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서남통신에 실린 글입니다.
뉴스레터 56호 (2007년 11월 10일)

중국에서 만난 다민족, 다문화 사회의 눈물겨운 현실
          

이혜영
(BASPIA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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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조선족 자치주 한마을의 추수모습



지난 3년 사이 10차례 정도 중국의 특히 동북 3성 지역을 방문하면서 나는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탈북자들뿐 아니라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안고 있는 중국동포(조선족)들 그리고 탈북자들의 새로운 가족이나 이웃이 된 중국 한족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흔히 외부 세계에서 중국 내의 탈북자들에 대해 논할 때, 자를 대고 선을 긋듯이 편리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현실 속에서는 그처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미묘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중국 방문의 끝 무렵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일부인 왕청(汪淸)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왕청은 과거 일제 강점기에 독립 투사들이 활동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중국동포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왕청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십 수개가 넘는 작은 농촌 마을들을 지나쳤는데,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학교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 나마 그 중 한 마을에 모여 있는 소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느라, 어린 학생들이 추운 겨울에도 새벽에 일어나 차를 얻어 타고 등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많은 아이들의 경우, 부모 중 한쪽 또는 둘 다가 돈을 벌러 타 지역의 도시나 한국으로 갔기 때문에, 연로한 조부모의 손에서 크거나 고아 아닌 고아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족과 한족이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도시가 아닌 농촌 지역의 경우 부족한 교육 시설과 점차 줄어드는 아이들 숫자 때문에 이러한 혼합형 학교가 흔하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어떤 경우에는 농촌 지역 소학교의 1~ 2 학년에 다니는 아이들 중 반 정도가 다름 아닌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 와서 중국동포 또는 한족인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 백 년 이상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서 중국동포들이 힘겹게 정착해 온 지역에서, 탈북자들은 물론 그들의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2세들이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중 한 마을의 몇몇 중국동포 분들과 함께 왕청현 시내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갔었다. 요즘 중국 전역에서도 인기가 높은 사천성 요리인 (훠궈; huoguo)’라는 이름의 음식이었는데, 중국식 샤브샤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채, 고기, 해산물 등을 넣어서 익혀 먹는 국물은 맵고 독특한 향이 나는 것과 부드러운 맛에 뽀얀 색깔의 것으로, 두 종류가 한 냄비에 동시에 나오는 것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이 나오자, 그 마을의 병원에서 일한다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의사 분은 빨간색 국물은 한족을 흰색 국물은 조선족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멀리 한국에서 자신들의 마을을 찾아준 것에 대해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분들도 한결같이 중국동포 분들이 중국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 덕분이라면서, 하루 빨리 남북이 통일되어 우리 민족이 더불어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중국동포로서는 드물게 어렸을 때부터 한족 교육을 받아 조선말이 서툴다는 어느 소학교의 체육 교사 분은 한국은 우리 민족의 영광입니다!” 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다. 순수하신 그분들의 과분한 환영을 받으면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한국 사회는 중국동포 사회가 처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은 물론 탈북자들과 그들의무고한 자녀들이 10년 넘게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강국 그리고 경제 규모 세계 11~12위를 자랑하는 한국은 어쩌면, 이번에 만난 중국의 어떤 한족 학자 분이 한국을 가리켜 실수로 (island)”이라고 부른 것처럼, 국경 밖의 같은 동포 나아가 인류에 대한 이해와 관심 면에서 여전히 고립된 섬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2007년 겨울, 중국에서 만났던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분들에게도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바란다.

 

기사링크: http://www.seonamforum.net/newsletter/view.asp?idx=1416&board_id=12&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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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건 bonu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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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조선족)와 한족이 모두 즐겨먹는 훠궈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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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대교

가을이네요. 호떡은 드셨나요?
아직 올 가을들어 한번도 안 드셨다면 지금 얼른 사러 나가세요.
그리고 먹으면서 이 글을 보세요.

연재 시리즈인 '재일교포 그리고 아시아인' 입니다만, 오늘 이 순간까지 그 존재를 아예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뒤에서 이혜영씨가 "얼른 블로그 쓰시오"라는 압박을 주길래,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있더니...오오, 오늘은 이걸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ㅎㅎ

지난 10월 6일부터 9일까지, 한국과 일본의 NGO들이 만나는 <제5회 한일시민사회포럼>을 다녀왔습니다. 지구촌나눔운동이라는 한국의 개발 NGO 내부에 있는 "아시아시민사회운동연구회"와 일본 실행위원회가 주최하는 모임인데요, 참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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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의 모습. (사진출처: 지구촌나눔운동 홈페이지)


일정은 전라남도 광주를 방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으흠..광주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넘기면서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오늘의 핵심은 제가 이번 포럼에 한국과 일본 어느 쪽 사회에 속해서 참가했는지, 라는 부분에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 측에 속해서 회의를 소화했는데요...이게 아주 새로운 느낌을 제게 주었답니다. "지속적"인 느낌이랄까요. 한국과 일본, 나아가서는 동북아, 동아시아의 시민사회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제가 한국 측에 속해 있다는 것이..."난 여기서 일하고 있다" 싶었던 거죠.

아무튼, 차차 이야기를 해나갔으면 합니다. 현재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 달에 있는 2기 출범을 앞두고 업무과다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요즘 세상에 안 바쁜 사람 없다지만요 ㅎㅎ 최근 들어 블로그를 쓰는 의미라든가 재미를 확실히 느끼게 되었는데 시간을 내지 못해서 스트레스가 좀 쌓이더라고요...

그래도 곧 연말. 올해는 쓩~ 달려가야죠. 블로그 매일 쓰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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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업무과다.. ^^ 대표님, 달리세요, 화이팅!

    2007.10.15 23: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서대교

      네~ 달려야죠~ 전 말띠거든요 ㅋ

      2007.10.23 11:22 [ ADDR : EDIT/ DEL ]
  2. 윤정

    안녕하세요~ 곽윤정이에요! 잘 지내셨죠? 대표님 호떡 너무 좋아하시는것 같아요~ㅎㅎ 블로그에 자주 들릴께요!

    2007.10.16 08:39 [ ADDR : EDIT/ DEL : REPLY ]
    • 서대교

      아앗~ 윤정씨, 안녕하세요^^ 그 후 소식을 주고 받지 못해서 현재 윤정씨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무지 궁금하답니다!

      2007.10.23 11:23 [ ADDR : EDIT/ DEL ]
  3. ㅎㅎ 광주에 오셨음 전화라도 한 통 주셔야죠!!!

    2007.10.29 14:45 [ ADDR : EDIT/ DEL : REPLY ]
    • 서대교

      아 정민씨^^ 그날 일이 끝난 게 11시반쯤이라 고민 끝에 연락을...못했답니다; 담엔 꼭~!

      2007.11.13 10:18 [ ADDR : EDIT/ DEL ]

[작성자] 서대교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8월도 15일이 지나면 벌써 가을 느낌이....이 시간대에는 아직 나지는 않네요. 사무실 무지 덥습니다. 다만, 창문 열어놓고 자다 새벽에 서늘해서 닫게 될 경우가 앞으로는 많아지겠죠?

어제 8월 15일은 많은 나라, 사람들에 있어서 특별한 날이었죠. 저도 매년 8월 15일이라는 날이 특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어제는 제 인생에서도 몇 안 되는 정말 말그대로 특별한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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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녀온 것은 경기도의 한 폐교를 이용한 아영장에서 열린, 한국 유수의 복지/국제개발 NGO인 월드비전에서 개최한 세계시민학교. 그 유명한 한비야 씨도 함께 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부터 시작되었으며, 중/고등학생 50명이 전국에서 참여해서 3박4일에 걸쳐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지도밖 행군단'으로 불리운다...으흠 제가 월드비전 홍보하는 것 같네요 ㅋ 아무튼 어제 여기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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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는 2번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어제 제가 간 것이 2번째 캠프였고, 이날 참가한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경기도에서 참가한 친구들이라고 합니다....아직도 제가 광고하고 있네요. ㅎㅎ 위에 사진이 참가자들이 배우고 먹고 자는 야영(?)장의 모습입니다. 괜찮더라고요.

오전에 여의도에서 출발을 해서 점심때 도착했는데요, 도착하자마자 놀란 게 있었습니다. 앗, 그전에 제가 뭐하러 갔는지 설명부터 드려야죠. 전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할을 맡아 찾아간 것입니다. 일본의 문화 등을 이야기하고 일본요리를 참가자 친구들이랑 함께 만들고 왔답니다...그 이야기는 좀 있다가^^

다시 점심 이야기로 돌아가면요,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자 점심에서는 몇 장 쓸까요?" 뭐냐고 물어보니까 3박4일의 식사는 모두 식권제로 이루어지는데, 아예 전체 식권분량이 정해져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더욱 놀라웠던 게, 친구들은 7명씩 한 조를 이루면서 7개 나라로 나눠진다는데 나라마다 나눠지는 식권의 양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7개국은...일본, 캄보디아, 파키스탄, 팔레스티나, 이탈리아, 수단, 베네수엘라 었는데요, 일본이 식권이 가장 많은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점심 때는 밥이랑 반찬 4개를 먹을 수가 있었죠. 근데 다른 나라들에서는 아예 식권 수가 모자라서 반찬 하나로 밥을 먹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실제 그랬던 것은 첫날 뿐이었다고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권이 많은 나라가 적은 나라를 돕거나, 거래를 하는 일이 발생해서 이제 다들 고루 잘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이야~ 이게 첫날에 왔으면 더 흥미로웠을텐데~ 싶더라고요(어제는 3일 째). 그래도 친구들 얼굴이 다들 밝아 보이니 보기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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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들이 이번 세계시민학교에서 일본 나라를 맡은 친구들인데요, 어제 하루 같이 있었는데 참 정이 가더라고요. 어찌나 예쁘고 똑똑한지(이정도면 되겠지?^^),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까지 다들 나름의 매력이 풍기더라고요. 그리고 뒤에 서 분은 이번 학교에 맨토로 참가하는 대학생 자원활동가. 전체적인 학교 운영을 지켜봤는데 여기서도 대학생들의 열기를 마구 느낄 수가 있었죠^^

점심을 먹었더니 이날 제가 맡은 강의(?) 비슷한 것이 있었죠. 일본에 대해 1시간 가량 했던 이야기 제목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나라 일본". 일본의 종교, 민족, 사회, 그리고 8월 15일이라 요즘에 가속화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일본'으로의 움직임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조금 딱딱한 주제를 골랐나 싶기도 했지만 우리 친구들이 문화적인 부분이 아닌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됐다면 저로선 다행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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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야기를 나눴던 교실. 오랜만에 칠판에 글을 써봤답니다. 역시 칠판은 매력이 있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일본이 가지는 다양성이 어떤 부분에서 나오는지 조금 언급을 할 기회가 있어서 참 좋았단 생각이 지금은 들더라고요. 호사가(好事家), 즉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재밌게 파고드는 사람들이 평가받는 사회는 참 좋지요.

나라별로 7조로 나눠서 이야기를 한 다음에는 전체로 모여서 각자 배운 것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들이 압권이었습니다. 얼마나 재밌는지, 이탈리아 팀에서는 커피를 끓여주지 않나(함께 뭔가 신기한 음식도 먹었죠;; 아주...미묘한 맛이 나는요), 베네수엘라 팀에서는 이날 강사로 참여한 알렉스(사진이 없네요. 한국에서 3년째 영화를 배운다는 멋진 분이셨습니다)가 salsa 춤을 가르쳐주고 다 같이 추지 않나...그런데 가장 인상깊게 남은 것이 파키스탄 팀에서 부른 노래였습니다.
 


노래 들어보셨나요? 지난 8월 14일이 파키스탄의 건국기념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날 강사로 오신 분과 파키스탄 팀들이 멋진 노래와 춤(?) 실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머리에 남는 멜로디더라고요^^

이제 저녁시간. 이날은 7개 나라들의 음식을 맛보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팀에서 만드는 메뉴는 오코노미야키! 이날은 해물이 들어간 버전이었습니다. 조리 준비를 함께 했는데 식권제 때문에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열심히 참가해서 그런 건지...우리 팀 친구들 요리 실력이 참 대단했습니다. 특히 오징어의 손질은 거의 완벽했죠^^ 그리고 그렇게 작게 찢어진 양배추를 처음 본 정도로 완벽한 준비작업이었답니다.

그런데....이게 요리를 잘 안 해먹는 사람의 비애인지, 오코노미야키를 굽기가 참 어렵고 힘들더라고요...그런데 어떻게 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고비를 넘어 땀을 흘리면서 드디어 완성!!

...완성된 음식 사진이 없네요. 대신 다른 6개 나라 음식들과 같이 진열된 모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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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우리 팀 음식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팀에서 만든 또르띠야(오믈렛)네요. 맨 안 쪽에 보이는 것이 우리 협력 끝에 만든 오코노미야끼...아무튼, 이날 만든 오코노미야키, 참 맛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간 음식이 사진 중간에 있는 캄보디아 음식. 소고기와 파인애플을 함께 볶은 것인데 이게 참 별미더라고요. 파인애플을 볶는 문화권에 대한 연구를 하고싶어졌답니다.

이렇게 해서 참 재밌고 신선한 시간은 끝났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참 글 분위기를 잡기가 어렵네요. 제가 어제 하루(정확히는 반일) 참가하면서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닌 "아 나도 중고등학생 때 이런 캠프에 한번이라도 참석했다면...!'이라는 아쉬움이였답니다.

누구나 크면서 자기 주변을 넘어 먼 나라나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을 혼자 배우기는 쉽지 않고, 또 혼자 배워도 독단에 빠질 위험도 있죠. 물론 외국에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못했던 저같은 경우는 이런 캠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라고요.

제가 1978년에 일본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나본 외국인들의 출신지는 오직 미국 하나 뿐이었습니다. 이러니 어디에 진정한 국제화가 있겠습니까. 이날 참가한 친구들은 적어도 7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의 말하는 모습과 웃는 모습, 진지한 모습을 본 것이고, 음식까지 맛 본 거죠. 이게 얼마나 좋을런지요.

그리고 더 하나 강하게 느낀 것이, 캠프에 참가하는 친구들이 엄청 예뻐보였다는 것. 제가 가진 모든 지식이나 경험을 모두 서슴없이 이야기하고픈 그런 생각이 저절로 나더라고요. 물론 이런 감정이 중/고등학생들을 아이로 취급하는 쪽으로 가버리면 문제겠죠. 그렇게 되지 않게 조심해야죠. 어제 만난 친구들과 나중에 어디서 재회할지 매우 궁금합니다. 새로운 삶의 재미와 기대가 생긴 느낌이랍니다^^

우리 BASPIA에서도 나중에 이런 행사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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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혜영

    저도 같은 행사에 가서 인권교육을 진행했는데, 대교씨처럼 같이 어울리고 노래도 부르고 음식도 만드는 일 - 저도 언젠가 해보고 싶네요. 아마도 다른 나라에 가야 가능하겠죠?^^

    2007.08.18 10:54 [ ADDR : EDIT/ DEL : REPLY ]
  2. hojai

    오호. 8월15일 고생했군요. 그래도 재밌었겠어요

    2007.08.21 07:50 [ ADDR : EDIT/ DEL : REPLY ]
    • 서대교

      정말 뜻깊은 8월 15일이었어요^^ 한국에서 난 사는구나 싶었어요 ㅎㅎ

      2007.08.21 22:38 [ ADDR : EDIT/ DEL ]
  3. 빨강머리앤

    블로그 구경잘 하였습니다. 블로그에 필요한 동영상, boom4u.net 도 구경 오세요~~

    2007.08.22 08:58 [ ADDR : EDIT/ DEL : REPLY ]
  4. 김태상

    독특한 식권제가 인상적인데요! ^^ 나중에 바스피아에서 이런 행사하면 저도 불러주세요! ㅎ

    2007.08.23 09:51 [ ADDR : EDIT/ DEL : REPLY ]
    • 서대교

      식권이 아니라잖아요^^ ㅎㅎ 중고등학생 캠프...할 수 있다면 정말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셈이죠.

      2007.08.28 19:26 [ ADDR : EDIT/ DEL ]
  5. 김경연

    식권이 아니고 식량권입니다 ㅎㅎ 아이들에게 불평등한 식량과 식수에 접근하는 권리에 대해 체험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였죠. 바스피아에서 한다면 제가 모든 노하우를 제공하지요.

    2007.08.27 01:01 [ ADDR : EDIT/ DEL : REPLY ]
    • 서대교

      답글 감사합니다^^ 저도 고등학교때 이런 자리를 접했더라면...좋은 기회를 만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노하우를 사용할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하겠습니다!

      2007.08.28 19:25 [ ADDR : EDIT/ DEL ]
  6. 김태상

    ㅋㅋ 지송합니다;;; 이런 무식;;

    2007.08.30 18:37 [ ADDR : EDIT/ DEL : REPLY ]

[작성: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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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코르나빙(Cornavin) 기차역 내부에 있는 어느 레코드샵 윈도우


감회가 새롭더군요.
이번에 제네바에 갔을 때, 혹시나 하고 찾아가 봤는데 저게 그대로 있더라구요.
반갑기도 하고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저 이미지는 그러니까 2005년 초에 BASPIA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간단한 팜플렛 같은 게 필요했는데
급한대로 ppt 파일로 단체 설명서를 만들때 사용한 이미지였던 것입니다.

저 이미지가 그 당시 단체를 만들려고 했던 우리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었다고나 할까요.
'현장 중심' '발로 뛰는 행동' 그리고 '힘든 사람들을 향한 빚진 마음'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저 이미지가 담고 있다는 생각에, BASPIA 최초의 임시 팜플렛에 로고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아래에 대교씨가 글을 올렸다시피, 그렇게 2년여가 흐른 지금,
그 당시 단기간에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많은 일들이 여전히 우리의 목표로 남아 있습니다.
그 목표를 잊지 않았고,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것만이 확실할 뿐,
그 과정이 왜 그리 힘들었는지, 솔직히 아직은 별로 돌아보고 싶지가 않습니다.

저것이 사실은 어느 음악 레코드샵에 붙은 광고 이미지에 지나지 않고,
그래서 저 이미지에 나오는 사람이 헤드폰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죠.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저 사람처럼,
BASPIA도 다시 일어나 힘차고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저 친구가 왜 이제 오냐며 등을 두드려 주면서 함께 가자고 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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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대교

    오 이 사람 기억 생생합니다...7월, 힘내지요.

    2007.07.01 21:36 [ ADDR : EDIT/ DEL : REPLY ]
  2. 태상

    너무나 잘 뛰어가고 계신 거 같은데~ ^^ 페이스 조절하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ㅎ

    2007.07.02 16:03 [ ADDR : EDIT/ DEL : REPLY ]
  3. '왜 이제 오냐며' 라는 말은 왠지 항상 슬픈 느낌이에요..ㅎ

    2007.07.04 22:38 [ ADDR : EDIT/ DEL : REPLY ]

[작성자] 서대교

벌써 1년 반이 지났고 보다 정확히 말하면 2년이 지났다. 좀더 신경을 쓴다면 2년 반이 지났고...

대학 시절 한국에 온 탈북자 분들을 만나고 인권을 위한 자원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아아 이렇게 세상은 좋아지는 거구나, 라는 것이였다. 하지만 그것이 깨진 건 2004년 11월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였다. 중국에 탈북여성 인신매매 조사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내가 본 것은 세상과 격리돼서 아무런 상황의 진전 없이 7~8년 전이랑 똑같은 어려움 속에서 사는 분들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중국에 간지 3일 만에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법을 택해서 활동하는 NGO를 만들어야겠다" 고 함께 중국을 간 혜영씨에게 선언을 한 것이며,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지금에 이르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지금, BASPIA의 활동이 아직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내가 그렇게 애타게 원하던 현장에서의 변화,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변화를 아직 이루어내지 못했다. 왜? 그것은 조직의 탓이다.

BASPIA가 정식으로 출범한 후, 내가 가진 거의 모든 돈과 힘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그래도 모자라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을 수없이 받아왔다. 그러면서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NGO가 될 것인지를 확실히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렇다. 거기에서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미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NGO를 만든다는 건 아무나 할 것이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정말 어렵다. 더구나 흔히 말하는 인권단체는 담요를 직접 갖다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여튼 어려운 것이다. 그 동안 쏟아부었던 돈과 시간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썼다면..그러니까 그걸 기부한다거나, 내가 다른 직장에서 그 시간을 일하면서 번 돈을 기부한다거나 했다면 그만큼 세상은 더 좋아졌을 것이다.

그러니까...이게 EGO 란 것과의 애매한 갈등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 "내가 해야된다"...자기성취, 자아실현..이런 것들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음,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난 그런 거 별로 없네. 그보다는 "난 이렇게 하면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그간 2년 반 사이에 내가 중국에서 만나고 온 사람들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적어도 좋아지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난 구조적으로 더 잘할 수 있게 지금 준비 중입니다오"

이게 정말 말이 되냐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자원활동을 할 때, 어떤 국제회의에서 만난 프랑스의 그 유명한 "국경없는 의사회" 직원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 하루종일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를 맹렬하게 하다가 지금 이렇게 맛있는 밥 먹고 집에 가면 따뜻한 샤워 하고 잘 건데,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안 느끼시나요. 난 좀 느끼는데요?"

그랬더니 그 분은 그러더라고.

"넌 학생이지? 그런 마음은 알겠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하는 것이지 않겠냐. 그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의 세상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라."

음...나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아무튼, 문제는 2년 반은 모두에게 2년 반이라는 것이다. 2년 반...

그런데 하나 좋은 건, 난 드디어 BASPIA라는 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 세상에 당당하게 알릴 수 있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며 어떤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BASPIA의 mission보다 더욱 날카롭고 확실한 mission을 2년의 고생 끝에 만들어낼 수가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앞으로 난 더 이상의 모라토리엄 없이 일을 하고 나갈 것이다.

아시아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인권의 실크로드.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출사표를 던지겠다.  

내 눈앞에 한권의 노트가 있다. 그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야 주인양반! 당신은 이 조그만 술병이 내 즐거움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난 이 병 바닥에 슬픔을 원했던 거야. 슬픔과 눈물을 원했던 거다. 그리고 그걸 찾고 맛본 것이다..."

도스트에프스키 <죄와 벌>의 한 구절이다. 내가 만 19세때 책에서 받아 쓴 내용이다. 난 사실 지금 조금 술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술병 바닥이 보이는데 거기에는 더 이상의 슬픔과 눈물은 없다. 나, 그리고 BASPIA는 앞으로 보다 강력한 힘으로 세상에 도전하고 세상이 보다 더 좋아지는 것에 기여를 할 것이다. 내 청춘은 끝났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Posted by BAS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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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이

    100번째 글이었네요. 축하합니다.^^

    2007.06.21 00:57 [ ADDR : EDIT/ DEL : REPLY ]
  2. 태상

    와우, 대표님, 화이팅입니다! ^^ 저도 BASPIA를 지켜보는 수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거. ㅎ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07.06.22 13:21 [ ADDR : EDIT/ DEL : REPLY ]
  3. 예원

    저번 회식때 해주셨던 얘기도 있네요^^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표님들 모습 보면서 세상의 희망을 느껴요. 정말이에요~ go for it !

    2007.06.23 03:39 [ ADDR : EDIT/ DEL : REPLY ]
  4. 10년이 되려면... 앞으로 7년 반 남았네요^^ 서두르세요.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999.

    2007.06.24 00:39 [ ADDR : EDIT/ DEL : REPLY ]
  5. hojai

    천천히 가더라도 꾸준히 가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2007.06.25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이혜영

      최근에 본 어떤 책에, 새로운 사회 조직을 만드는 일을 커다란 Wheel을 조금씩 조금씩 돌려서 한바퀴 두바퀴.. 수십, 수백 바퀴 쉬지 않고, 탄력을 받을 때까지 돌리는 과정에 비유하더군요. 그 작은 힘들이 모이지 않으면 결코 먼 길을 갈 수 없겠지요.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해야죠!

      2007.06.26 23:13 [ ADDR : EDIT/ DEL ]
  6. 꿈을 잊지 않고 있다면, 언젠가는 이뤄지는 법입니다. ^^ 화이팅이에요~ 조만간 같이 술잔을 비우시죠!!! ㅎㅎ

    2007.06.26 09:00 [ ADDR : EDIT/ DEL : REPLY ]
  7. 서대교

    코멘트 감사합니다^^ 얼른 새로운 글 올려야죠 ㅎㅎ;

    2007.06.27 18:20 [ ADDR : EDIT/ DEL : REPLY ]

[작성: 이혜영]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제네바 출장을 마감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개인적으로 저에겐 무척이나 소중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네바가 국제적 인권 기구들이 집중된 곳인 만큼, 전 세계 각지의 풀뿌리 현장과 국제적 수준의 논의의 장들이 서로 맞닿는 지점들을 피부로 느끼고 더욱 고무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네바에 있는 동안 제가 방문한 몇몇 기관/단체들을 소개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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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빌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지뢰 희생자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세발' 의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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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보다도 더 먼저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 건물의 모습이다. 오래된 역사만큼 빛바랜듯 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초대형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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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수많은 난민들에 대한 구호와 보호 활동을 펼치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CHR) 건물이다. 건물 중간이 모두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이다.

제가 이번에 제네바에 온 직접적인 이유이자 목적이었던 트레이닝에 대해서 좀 더 얘기를 하자면, Franciscan Interantional(FI)이라는 카톨릭 기반의 국제적 NGO와 Anti-Slavery International이라는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국제적 NGO가 올해로 6년째 공동으로 제공하는 3일간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트레이닝은 위의 FI라는 단체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는데, 사무실이 어찌나 멋지게 꾸며져 있던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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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 사무실의 깔끔하고 탁 트인 모습 그리고 사무실에 걸려있던 인상적인 사진

이번 트레이닝의 주제는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에 초점을 맞추었고, 유엔의 인권 시스템 중에서 조약기구(국가들이 가입한 여러 국제 협약에 대한 모니터링)와 특별절차(주제별 또는 국가별로 인권 이슈를 다루는 특별 보고관 제도 중심)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ILO의 노동 관련 협약들을 통해 인권 문제들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BASPIA의 관심 대상인 아시아 지역의 여성과 아동들의 삶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 - 이주, 인신매매, 강제노동, 아동노동 등 - 에 대해서 보다 효과적이고 영향력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한 내용이었죠.

이번 트레이닝에는 위에 언급한 두 단체들이 자신들의 파트너 단체를 초대하는 형식으로 해서 총 6개 국가에서 활동가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태국, 일본(필리핀), 인도, 우간다, 레바논에서 온 분들과 만날 수 있었죠. 연령이나 경험은 다 달라도,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보다 전문가로서 열정과 애정이 넘치는 모습으로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면 쉽게 공통점을 찾을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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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을 주제로 한 트레이닝에 참가한 참가자들과 트레이너들의 모습

한국에 돌아가서 이번에 듣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눌 것을 생각하니 기대가 됩니다. 제네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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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진

    와 저 의자 고문과 관련된 줄 알았는데 세발의자였군요~ FI 사무실은 마치 디자인 회사 같네요.

    2007.06.18 20:10 [ ADDR : EDIT/ DEL : REPLY ]
    • 이혜영

      고문을 떠올릴수도 있을것 같아요. 그런데 저렇게 거대한 고문 의자라고 생각하니 정말 무서운걸요... 사실 그런 일들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현실이라는 생각,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07.06.19 15:20 [ ADDR : EDIT/ DEL ]
  2. hojai

    음..역시 영어가 돼야 저런데 가서 회의도 하는구나.

    2007.06.19 10:39 [ ADDR : EDIT/ DEL : REPLY ]
    • 이혜영

      물론 영어로 진행이 되긴 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말이 많은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 방법을 찾게 되겠죠?^^ 조만간 함 뵙겠습니다~

      2007.06.19 15:22 [ ADDR : EDIT/ DEL ]
  3. 태상

    3탄이 기대됩니다. ㅎ

    2007.06.20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 이혜영

      3탄은 제네바에서 맛본 음식 소개가 될 듯 한데요..^^

      2007.06.24 13:57 [ ADDR : EDIT/ DEL ]
  4. 예원

    멋지다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지실 정도로 많이 들으셨겠죠? 하지만.... 멋지시네요 :)

    2007.06.23 03:45 [ ADDR : EDIT/ DEL : REPLY ]
    • 이혜영

      그 말씀은 제가 잘 전해 드릴게요.^^ 훌륭한 cause를 위해 열정적이면서도 겸손하게 일하는 "멋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저도 늘 감사하고 있답니다.

      2007.06.24 13:56 [ ADDR : EDIT/ DEL ]
  5. 아.. 저 세발의자 드디어 완성됐군요! 지난해에는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 제네바에서 좋은 경험하고 오셨길 ^^

    2007.06.26 09:02 [ ADDR : EDIT/ DEL : REPLY ]
    • 이혜영

      세 발로도 꿋꿋이 서 있으라고 보수 공사를 했었나봐요. 어쩐지 전에 봤을 때보다 견고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요 조만간 한번 봐요~

      2007.06.26 10:25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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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 있는 유엔 건물들로 가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트램(tram)의 모습


[작성:이혜영]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네요. 사무실 확장 이사후 넓어진 공간만큼 부지런히 활동을 하느라 그랬던 것이라 이해해 주셨으면...^^

저는 지금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지난 토요일 밤에 파리를 거쳐 제네바에 도착을 했지요. 제네바에 온 목적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인신매매/강제노동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NGO에서 제공하는 트레이닝을 받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곳 제네바에 위치한 여러 국제 기구들과 만나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지요. 일주일간의 이번 제네바 출장은 이전에 BASPIA가 협력을 제공한 적이 있는 영국의 한 인권 단체의 초청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번 주는 유엔 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 세션이 열리고 있어서, 전 세계에서 찾아온 인권 NGO, 정부, 국가인권기구, 시위대 등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제네바 도시 여기 저기서 볼 수 있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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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만호수와 힘차게 솟아오르는 분수대가 보이는 풍경


제가 제네바에 온 것은 이번이 총 네번째입니다. 적지는 않은 횟수인데, 생각해 보면 그 네 번이 모두 다 제게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제네바에 온 것이 2003년 4월, 당시에 최초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이 유엔 인권위원회(현재 인권이사회로 격상된 기구)에 상정되었을 때, 당시 제가 속해 있던 단체를 대표해서 결의안 통과를 위한 로비활동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유엔 인권 시스템의 허와 실은 물론, 북한의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엄청난 시각 차이에 대해 피부로 느끼고 강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eye-opening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는 그 다음`해인 2004년에 다시 제네바를 찾게된 것인데, 그 무렵엔 이미 전에 일하던 단체를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던 중이었지요. 그 당시 제 고민의 핵심은 '현장 경험'과 '학문적 지식'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였던 것 같습니다. 2달 정도를 제네바의 한 인권 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하루에도 12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이 제 고민을 듣고 해주었던 조언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보다는 '나를 더욱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하면 좀 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땐 그 조언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결국 '내가 뭘 원하는가'란 고민에 휩싸인 채 제네바를 떠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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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도시'라 불릴만 하다



그리고나서 채 1년도 되지 않아, 2005년 2월에 저는 제네바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죠. 그땐 저 혼자가 아니라, 지금 BASPIA의 공동대표인 서대교씨와 함께였습니다. 1년도 안되는 그 기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이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역시 중국 동북 3성 지역을 방문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 조선족, 한족, 탈북자 - 의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저나 대교씨나 개인적 차원에서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당시 제네바에서 열린 어느 컨설테이션 미팅에 초대된 저희는, 제네바에 도착한 바로 그날, 밤을 꼬박 세서 중국에서 본 탈북자들의 현실에 대한 발표자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날 새벽에 BAS라는 개념이 탄생했고, 그것이 지금의 BASPIA가 있게 된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하고도 넉 달이 지난 2007년 6월, 저는 다시 제네바에 와 있습니다. 이제는 한 단체의 대표로서, 그리고 지난 2년이 넘는 시간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온 중요한 프로젝트를 현실화하기 위한 단계에서 또 다시 제네바에 와 있는 것입니다. 너무도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일상의 대화와 유엔식 언사가 뒤섞여 있는 이곳 제네바 - 이 곳엔 기대와 이상이 높은만큼 회의와 실망도 많은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고, 누군가는 자기 합리화를 해야하고, 누군가는 다시 이를 악물고 현장으로 돌아가야만 하겠지요. 저 역시 세번째 부류의 사람 중 하나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만, 아주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제네바와 관련된 제 개인적 넋두리를 좀 늘어놓았네요.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좀 더 재밌고 유익한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봉 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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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원

    와~ 근데 이 대표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없네요~ 목표하신 것들 모두 달성하시고 다시 이를 악 물고 돌아오셔서 뵈요. 대표님 안계시니 사무실이 넘 썰렁해요 ^^

    2007.06.13 09:40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혜영

    혼자 여행 다닐때 문제는 역시 사진찍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예원씨 글을 보니 힘이 납니다. 여긴 이제부터 하루 시작이거든요! 예원씨도 다른 사무실에 계신분들도 오늘 좋은 하루 되시길~

    2007.06.13 14:06 [ ADDR : EDIT/ DEL : REPLY ]
  3. 서대교

    앗~ 오랜만에 글 쓰려고 들어왔는데 벌써 글이 있네요..그럼 전 담에..ㅎㅎ

    2007.06.13 22:55 [ ADDR : EDIT/ DEL : REPLY ]
  4. 예진

    다음번엔 셀카 사진들도 부탁드려요!! ^^ 대표님 글과 사진들이 더운 날씨 시원한 소나기 같은 느낌이예요.

    2007.06.14 13:27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혜영

    예진씨, 날씨가 많이 덥나봐요. 에어컨이 제대로 가동되어야 할텐데... 이곳은 그야말로 쾌적한 날씨랍니다. 조만간 예진씨도 제네바를 활보할 날이 있을테니까 그때 와서 직접 느껴보시길!^^

    2007.06.14 13:59 [ ADDR : EDIT/ DEL : REPLY ]
  6. 태상

    대표님, 너무 멋져요. ^^ 과연 전 제네바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되고,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지..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ㅎ

    2007.06.14 17:31 [ ADDR : EDIT/ DEL : REPLY ]
  7. 이혜영

    태상씨, 안그래도 태상씨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을 오늘 만나고 왔답니다. 나중에 태상씨로부터 듣게 될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그럼 곧 뵈요!

    2007.06.15 07:16 [ ADDR : EDIT/ DEL : REPLY ]
  8. sh

    야, 멋지다!

    2007.06.15 11:27 [ ADDR : EDIT/ DEL : REPLY ]
  9. 저랑 같이 가셨으면 한 1000장쯤 모델이 되어 주셨을텐데.. 안타깝습니다! ^^

    2007.06.26 09:04 [ ADDR : EDIT/ DEL : REPLY ]
    • 이혜영

      호호 영광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2007.06.26 23:30 [ ADDR : EDIT/ DEL ]

[작성자] 서대교

5월 1일, 메이데이 입니다. 1886년에 미국총노동조합이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면서 데모를 했던 날이라고 하지요. 덕분에 우리 BASPIA도 오늘은 휴무였습니다. 여긴 아직도 사무실이긴 합니다만...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 본 지는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보던 당시의 느낌이 약간 사라지긴 했습니다만,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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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곳은 명동 CQN 극장이였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CQN이란, CINE QUANON의 약자로, 일본 영화 제작/배급회사의 이름입니다. 여기 회사 사장 이봉우씨는 재일교포로서 한류열풍을 일본에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었죠. 또한 뚜렷한 주제 하에 영화를 골라, 제작 or 배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노동자, 이민, 재일교포, 등등 '서민'의 시선을 매우 중요시 하는 회사라는 느낌이 듭니다. 최근에는 "흘러걸스"를 제작/배급 하느라 회사 업적이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입부가 너무 길죠? 그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제가 지금도 이 "우리학교" 라는 작품에 대해 무엇을 쓸지 결정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썼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분명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제가 여기 영화에 나오는 친구들이랑 같은 재일교포고, 또한 초등학교 6년 간을 군마현에 있는 조총련학교를 다녀서 그런 건지 수많은 감정이 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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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은 음...영화 "투루먼 쇼" 마지막 장면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 영화 마지막 장면 기억나세요? 피자 먹는 남자 둘이가 "다음 프로가 뭐지?(정확치는 않습니다만)"하면서 채널을 돌리는 장면이죠.

분명 여기에 나오는 혹카이도조중고급학교는 지금도 일본에 존재하겠는데요, 며칠이 지나니까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제가 재일교포인데도 이렇다면, 다른 분들은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떠세요?

그래서 지금 제 마음에 남아있는 감정은 대략 세 가지 쯤으로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조금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만 함 써보죠. 순서는 1위부터...가 아니라 다 쓴 다음에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1: 촬영자 김명준 감독에 대한 감사

이 영화를 보고 몇몇 분들이 재일교포 사회와 조총련학교에서의 교육에 대해 몹시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에 듣던 주체사상 교육이나 사상교육 장면이 왜 안 나오는지 저한테 물어보기도 했었죠. 제가 알기로는 그런 교육은 최근 몇년간은 거의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사실 저도 보면서 "이게 전부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긴 했죠.

근데 '재일교포사회와 조총련의 전부'가 아니긴 하지만 '그 일부'를 매우 정확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저는 엄청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짧은 2시간 영상에 적어도 현재 혹카이도 조총련 학교에서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죠 '기록'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열심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어쨋든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에서 알려졌고, 앞으로 영상으로서 오래오래 남는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가치가 엄청나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촬영을 처음 함께 시작하신 고 조은령 감독님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 과정을 함께 했던 혹카이도 조선학교 친구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 그들이 재일교포로서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2: 리호미 선생님에 대한 생각

영화에서 강력한 인상을 남겨준 고 리호미 선생님. 저는 물론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교원생활을 정말 오래 하신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자기 아이가 같은 학교 학생으로 있던 선생님도 계셨을 정도인데...제가 목표로 삼는 것이 바로 "늘 그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모든 것들이 글로벌화 되면서 마치 무조건 넓고 활발하고 커야 가치가 있다고 사회에서는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별로 여기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바꿔 말하면 여기저기 움직이고 정신이 없는 것 보다는, 말그대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물이나 사람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죠. 늘 거기에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고 있는 것이 요즘에는 참 좋습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이죠.

그러한 맥락에서 정말 리호미 선생님은 인상적이였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 받은 것도 리호미 선생님 모습에서였고요...눈가의 보기 좋은 주름이라는 것은 아무한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죠. 혹카이도에서 리 선생님 한테 배운 분들은 정말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태어난 군마현을 나와서 지금 서울에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내가 늘 있을 곳은 과연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딜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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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던 군마조선초중급학교 홈페이지 메인 화면의 모습입니다. 학생 얼굴이 다 나와있는데 조금 불안하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아래 3번이 더욱 중요하겠죠. 근일 업데이트 예정~

3: 재일교포 사회와 조총련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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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영

    3부는 언제쯤???^^

    2007.05.12 21:45 [ ADDR : EDIT/ DEL : REPLY ]

[작성자] 서대교

요 며칠 재일교포 모드로 지내고 있습니다. 주말에 영화 <우리학교>를 봐서 그러죠. 영화를 본 감상은 며칠 내로 올리도록 하고요,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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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무실을 와보니 책상 위에 떡이 있었습니다. 아주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물어보니까 일본 네트워킹 담당으로 일하시는 공윤선씨가 가져다주셨다고 하네요^^ 배가 고팠던 관계로 보자마자 먹었더니 이게 정말 마싯소요~(아유미 풍)

오후에 잠깐 윤선씨랑 이야기를 하면서 떡은 사신 거냐고 물어봤더니, 할머님이 손수 만드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제 할머님(우리는 할매도 아니라 한매라고 불렀습니다)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는 군마현에 신마찌라는 조그만 동네서 자랐는데,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희 큰 집에서는 떡이나 김치를 파난 장사를 했었습니다. 저희 집은 친척들이 다 가까이에 모여 살았던 관계로, 자주 놀러갔었는데 덕분에 갈 때마다 떡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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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씨 할머님 떡은 두 종류. 무자게 맛이 있었습니다^^

언제 가도 떡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래떡, 송편, 등등 많았는데, 백미는 기계에서 가래떡이 나오는데, 그걸 가위로 짤라 곧바로 설탕에 찍어먹는 것이었습니다. 음..정말 맛있었는데. 또 연말이면 떡국 떡 주문이 폭주해서 제 어머니부터 시작해서 모든 며느리들이 큰 집에 모아서 다 같이 모여 않자 떡을 칼로 자르긴 했었죠...

제가 정말 지금도 한 점의 혼란 없이 재일교포로서 한국에서 살고 있을 수 있는 게, 이런 추억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볼때, 제 고향은 경상남도가 아니라 일본 군마현이라고 보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싶은데..

제 책상 위에는 오직 할머님 사진 만이 있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 할머니, 아니 한매지만 떡을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나네요.


열심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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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내

    '열심히 살아야죠' 라는 말이 왠지.. 기특하게 들리네요..ㅎㅎ

    2007.04.25 16:42 [ ADDR : EDIT/ DEL : REPLY ]
  2. 윤선

    사실..저희할머니께서 싸주실때도 '이런거 사무실 분들이 드실래나..'조금 걱정하면서 조심조심 내놓았는데 이 글을 보니까 너무 기쁘네요^^ 요즘들어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할머니들의 사랑은 할아버지나 이모들, 다른 친척분들의 사랑에 비해서 뭔가 특별한 게 있는게 같아요.. 이거 프린트 해서 저희 할머니 보여드려야겠어요^^ 그럼 할머니는 너무 좋으셔서 앞으로 소박하지만 양은 푸짐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실꺼예요^^

    2007.04.25 22:30 [ ADDR : EDIT/ DEL : REPLY ]
  3. hojai

    우리 학교 리뷰좀 부탁드려요

    2007.04.27 13:56 [ ADDR : EDIT/ DEL : REPLY ]
  4. 비밀댓글입니다

    2007.07.18 13:33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