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서대교

안녕하세요 서대교입니다. BASPIA 블로그, 요즘에 포스팅 간격이 좀 길죠?; 총회, 연례보고서, 자료집 발간 등으로 2월을 따라 잡느라 고생한 것이 그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3월도 반이 지났고, 봄기운도 많이 느껴지고...

오늘은 오랜 만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1월 초부터 중단되고 있는 '재일교포 그리고 아시아인' 시리즈 제4탄을 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 글 "1", "2", "3" 각각 클릭해주세요)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오늘은 특별판으로 지난 2월에 발행된 BASPIA 연례보고서(클릭하면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에 게재한 글인 <인권의 실크로드 -아시아를 위한 제언->이라는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제가 그 동안 생각해온 것들을 글로 표현한 것임으로, 말하자면 재일교포로 태어난 서대교라는 인간의 지금 단계로서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글입니다. 좀 깁니다만 시간이 나실 때 한번 읽어봐주셨으면 하고요,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많이 발전시켜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재일교포 그리고 아시아인" 번외편(番外編) <인권의 실크로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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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실크로드 -아시아를 위한 제언


들어가며

인권의 실크로드 아마도 여태까지 아무도 쓰지 않았던 단어이자 개념일 것이다. 이는 본 개념이 태생적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그만큼 결함이나 한계가 있는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여기에 분명 그 동안 고민거리가 되어왔던 “‘인권아시아의 결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고 확신한다. 이 글은 필자의 비전과 소신을 밝히는 글이 될 것이다.

 

……혹시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실크로드의 일부라면?

서론 -실크로드는 아시아의 대명사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앞으로 여러 번 등장하게 될 실크로드에 대해 살펴본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정의할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옛날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해온 동서교통로의 총칭(일본 실크로드학의 태두인 와세다대학교 교수 長澤和俊(나가사와 카즈토시)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실크로드를 이야기할 때에는 중국의 장안(서안)과 이탈리아의 로마를 각각 종착지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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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크게 3가지 길로 나눠진다. 하나는 북위 50도 선을 따라 중국 북부로부터 흑해 북부지방까지의 커다란 초원을 무대로 하는 초원의 길(Step route)”, 또 하나는 중국의 서역(지금의 신강위그르자치구)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 북쪽까지의 사막과 고원을 무대로 하는 오아시스의 길(oasis route)”,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연안으로부터 이집트연안까지의 푸른 바다를 무대로 하는 바다의 길(marine route)”이 각각 대표적인 루트()이다.(지도는 나가사와 교수의 책을 참고로 필자가 직접 제작)

실크로드의 역사는 길다. 그것은 기원전 4000년경에 이미 채도(彩陶/도자기)가 동유럽,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중국에 걸쳐 넓게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을 봐도 알 수가 있다. 그 외에도 실크로드를 통해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문물들이 오고 갔다. , 비단, 제철, 보석, 과일, 유리, 악기, 학문, 종교, 식물 등이 실크로드를 타고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갔고, 특히 제지법, 나침반, 화약 등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어 유럽을 중세에서 근세로 이끄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위의 지도를 보면 실크로드는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현재 우리가 말하는 아시아지역에 속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서아시아실크로드가 지나가지 않은 지역은 없다. 그렇다면 그런 실크로드를 다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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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도의 모습. 한겨레 신문 웹사이트에서


그것 역시 실크로드가 커버하는 지역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를 이동한 것이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과거 실크로드를 다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로마와 장안을 향하지는 않았다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내린 실크로드의 정의를 다시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장안과 이탈리아의 로마 사이에는 직선거리로 9000키로, 실제 실크로드를 따라 간다면 12000키로의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는 다 아시아다.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할 때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실크로드를 아시아(동양)과 유럽을 잇는 동서교류의 길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들 간을 연결하는 길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치 모든 실크로드가 두 종착지인 중국과 유럽을 위해서만 존재했다는 식의 사고는 자칫하면 그 중간의 모든 과정을 부수적인요소로만 바라보게 된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 실크로드를 역사와 사건의 주요무대로 보는 시각을 도입해야 한다. 실크로드는 거대한 하나의 줄기가 아니라 아시아의 Local의 집합체이며 아시아를 구성하는 연결거리인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의식이 고조되어 왔으며, 이를 토대로 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시아의 인권을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움직임이 과거의 실크로드연구에만 해당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은 실크로드가 박물관이나 역사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인 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에도 도로(아시안 하이웨이)와 철도(철의 실크로드)로 대체 되며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 길 주변에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실크로드랑 바로 아시아의 길이며 아시아 사람들이 살았던 무대라는 것이다. 실크로드는 아시아 전역을 커버하며 그것이 이어주는 것이 바로 아시아이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의 대명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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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하이웨이의 모습



본론1 -인권의 실크로드 개념의 필요성

'실크로드'와 '인권'은 역사적으로도 지금도 가장 거리가 먼 개념들이다. 실크로드는 주로 교역과 전쟁의 길로 알려져 있다. 실크로드를 따라서는 동서고금의 문물들이 오가기도 했으나 알렉선더 대왕의 인도원정, 중국 한무제의 서역원정, 징기스칸과 그 후예들의 중앙아시아/동유럽 원정들도 또한 이 길을 따라 이루어졌다. 또한 근대에 이루면서는 서방의 탐험가들이 연구  명목으로 정보수집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크로드를 '아시아의 인권을 위한 길'로 만들어나가자는 것이 바로 <인권의 실크로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왜 '인권의 길'이 아닌 '인권의 실크로드'인 것일까?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히려 뒷부분, 즉 실크로드라는 개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냥 인권의 길이라고만 하면 되지만, 아시아에서는 반드시 인권의 실크로드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아시아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지금 쓰는 모든 글이 개인적인 것이지만), 아시아의 정체성은 어떤 동일성(同一性)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요 몇 년간의 대학교 생활과 NGO활동을 통해서 강하게 느끼고 왔다. 아시아의 정체성은 차이에서, 아니 '차이의 공존(共存)'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실크로드의 존재라는 점이 여기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가 핵심이다. 실크로드라는 말에 획일적인 요소는 포함이 안 되어있다는 것이다. 실크로드가 발달한 이유는 각 지역 간의 문화 차이가 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처음으로 획일적인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의 개념이다. 중요한 건 인권은 문화가 아니다는 점. 문화에는 차이가 있어도 되지만 인권에 차이는 없다.

 

실크로드의 핵심지대라고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는 지금도 많은 인권침해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정보가 언론보도를 탈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이유를 꼼꼼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실크로드를 동서교류의 길이 아닌 아시아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이야기는 바꿔 말하면, '아시아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이것은 인권도 마찬가지이다. 인권은 사람을 묶어서 생각하지 않으며,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고 개개인의 얼굴을 중요시 한다.

 

<권리의 실크로드>라는 개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유용하다. 아니, 필수적이다.

첫째, 아시아와 서방세계를 관계를 정상화 시켜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광의의 아시아라는 개념이 애당초 단일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으로 <권리의 실크로드>를 추진하면서 오히려 아시아적인 가치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권이라는 동일한 기준을 내세우면서 각자의 문화가 공존한다는 비전이다. 이 때 아시아의 여러 지역과 서방세계는 필연적으로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된다.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다른 문화권이라는 틀로 말이다.

 

두 번째 측면은, 이것이 아시아 내부에서의 진정한 교류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란, 바꿔 말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의미한다. 실크로드를 구성하는 아시아의 Local들이 공동의 인식을 가짐으로써 아시아에서 아시아로(from asia to asia)”라는 실크로드의 본질과도 맞는 시각이 전환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에서 똑같이 중요한 건 인권은 문화가 아니다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어느 지역의 전통 문화와 부딪히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권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함으로써 오히려 각각의 문화적인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다양성이 확보되는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식의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인권의 기준을 받아드릴 때에는 충돌이 예상되며 실제로 그것이 아시아와 인권이 친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되고 있다.

 

사실, 인권이 문화를 해친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인권과 문화가 공존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그 지역과 민족의 문화적 특징을 가장 확실하게 보존하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아시아에 속하는 우리 스스로가 지금 현재 인권이 보장 안 된다는 점을 가지고 해당 지역이나 민족의 문화를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그 실태 없는 아시아적 가치의 동전의 한 면이다. 인권기준에 차이란 있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개선되고 실현되는 과정에서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이해가 꼭 필요한 지점이다.

 

인권의 실크로드는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아시아와 인권을 가장 원활하게 연결해주는 거리로서의 실크로드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다음 장에서는 인권의 실크로드의 실현가능성과 그 방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본론2 -인권의 실크로드 그 실현가능성과 방법

앞서 언급했듯이 <인권의 실크로드> 개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크로드를 바랍라볼 시각의 전환이다. 따라서 실크로드 자체에 대해서 잘 알 필요가 있는데 그러한 이해는 <인권의 실크로드>의 실현가능성과도 큰 연관이 있다.

 

여기서는 오아시스의 길(oasis route)의 구성을 예로 이야기해본다. 우선 오아시스(oasis)가 있다. 사막지대에서 유일하게 물이 나오는 오아시스는 도시화 되면서 교역의 중계지로서 발전된다.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다니면서 교역을 하는 것은 상인들이며, 그들이 모여서 만드는 것이 캐러번(caravan)이다. 캐러번은 낙타 수십 마리와 함께 험한 여정을 다닌다. 그러한 캐러번이 편하게 쉴 수 있게 오아시스에 만들어진 숙소가 바로 캐러번 사라이(Caravanserai)이다.
 

<인권의 실크로드>실현을 위해서는 이 세가지가 유기적으로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 핵심이 되는 것은 당연 oasis 이다. 필자는 이 oasis를 아시아의 현지 NGO”로 생각하고 있다. 현지 NGO란 말 그대로 아시아의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서 현지 사람들이 조직한 NGO를 가리킨다. 현지 NGO는 사실 <인권의 실크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이 없으면 실크로드가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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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사막의 생명이자 보석이다.
 

현지 NGO는 현장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현지의 인권문제에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지 NGO들의 네트워크가 바로 <인권의 실크로드>의 실태이다.

 

그렇다면 캐러번(대상, 隊商, caravan)은 무엇 일까. 이것은 위의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하는 유기적인 관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을 하며 정보와 문물을 서로 나누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현지 NGO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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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번. 낙타는 물이 없어도 끈질기게 걸어간다.
 

마찬가지로 캐러번 사라이(숙소, caravanserai) oasis인 현지 NGO의 열린 자세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모든 현지NGO에는 자신들의 자원과 경험을 나누는 것은 물론 그것을 축적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정리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또한 이것은 캐러번의 역할을 수행하는 현지 NGO를 따뜻하게 감싸줄 현지 시민사회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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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번 사라이. 거기는 늘 열려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이 결합하고 처음으로 <인권의 실크로드>의 실현가능성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화'적인 부분을 최대한 살리는 일을 현지 NGO가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서로를 몰라서 생기는 차이의 질과, 안 다음에 생기는 차이의 질 사이에는 천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이 인권의 실크로드는 시론적인 단계여서 논리구조가 세밀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이것을 토대로 꾸준히 가필을 하면서 최종적인 글을 내고자 함을 밝힌다.

 

아시아가 바로 내 발 밑에서부터 시작하고 있고, 서 있는 땅이 바로 실크로드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인식은 상당히 기분 좋은 소속감을 필자한테 가져다 준다. “여기가 내 자리다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BASPIA도 앞으로 실크로드의 한 부분인 동북아시아의 oasis이자 캐러번으로서 <인권의 실크로드> 실현에 일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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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S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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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좀 길지만 열심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대교)

    2007.03.18 22: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