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사업소개2008.08.07 13:08
본 글은 지난 2008년 3월에 BASPIA에서 주최한 "인권과 개발의 조화를 위한 해외 전문가 초청 특별 강연"에서 토론자로 참가한 월드비전 한국 옹호사업팀의 김경연 팀장님의 토론문 전문입니다. 호주의 Human Rights Council of Australia(HRCA)라는 NGO의 전임 사무국장이자, "The Rights Way to Development"의 저자이기도 한 Andre Frankovits씨를 연사로 모신 지난 특별 강연과 관련된 글들을, 이 블로그의 다른 포스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행사 후기: http://baspia.tistory.com/166 
- 해외 초청 강연자의 사후 질의응답 내용: http://baspia.tistory.com/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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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한국 개발사회에서의 인권적 접근의 필요성과 당위성:
NGO
의 역할과 책임

 

- 월드비전 한국, 옹호사업팀 / 김경연 팀장

 

급속히 진행되는 세계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국제 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 증대 등으로 우리 사회의 국제 협력에 대한 욕구가 크게 증대되고 있다. 정부의 ODA 규모, 개발 NGO의 수와 지원 규모, 관련 학과의 수, 청년층의 관심 등 여러 측면에서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할 전망이다.

 

과연 무엇이 한국 사회로 하여금 이토록 국제 협력에 대한 욕구를 증대시키고 있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의 국제 협력에 대한 철학과 비전,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부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핸들 없는 자동차와 같이 우리의 노력이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고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도국 주민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근본적인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초기 태동 과정은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현재 한국 개발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은 자기 성장에 대한 욕구가 최우선시 된다는 느낌이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 보다는 가장 홍보하기에 좋고, 가장 상품화하기 좋고, 가장 도너(donor)가 좋아하는 곳으로 지원(사업)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 결코 느낌만은 아닌 것 같다.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채로 엄청난 후원이 쇄도하는 유혹 앞에서 재난의 현장을 언론에 상품화하며 앞 다투며 긴급 구호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물론 가난과 재난/재해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겠지만, 그 사랑마저도 온정주의에 그친다는 느낌이 들며 과연 사람과 삶, 그리고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바탕이 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흔히 개도국의 빈곤은 ‘게으름과 무능력, 부패’ 등이 주 요인으로 인식되고는 한다. 이는 개도국 빈곤의 주 요인을 정부의 책임성의 부족으로 간주하며 선정(good  governance)이나 민주주의를 원조의 조건으로 내세우고[1],‘부정 부패를 신 자유주의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과 원조를 삭감할 명분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다.[2] 아이러니하게도 이는‘게으름, 불결함, 거짓말’이라는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인상 깊었던 한국인들의 특징과 너무도 유사하다.[3] 문제는 이것이 빈곤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구분 짓지 못할 때 엄청난 차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빈곤의 원인이라면 우리 선조들을 욕하게 되는 것도 그렇지만, 과연 우리는 어떻게 절대 빈곤을 극복해왔느냐에 대한 설명이 어려워진다. 빈곤의 원인은 교육과 보건, 영양 등 기초적인 필요(Basic Human Needs)에 대한 접근의 기회가 차단되어 능력을 갖출 수 없는 인간의 모습, 즉 총체적인 빈곤의 현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 보건 등 기초적인 필요에 대한 접근의 기회가 커질수록 빈곤을 극복할 가능성은 증대될 수 있으며[4], 능력 개발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간은 누구나 자기 개발과, 사회개발에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개도국 주민들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잠재력에 대한 확신에 근거하여 국제 협력에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너무도 근본적이고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Frankovits씨의 지적처럼 인권적 접근(RBA)의 도입 초기에 “개발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이 접근을 사용해 보기도 전에 그것이 효과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준비가 부족한 채 벼락치기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 같은 한국의 개발 사회에 RBA는 많은 이점(부가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다. 우선 RBA는 빈곤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사람과 삶, 인간의 존엄성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하는, 근본적인 렌즈를 갈아 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RBA는 가장 연약하고 소외된(Vulnerable)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분석하고 우선하여 집중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RBA는 가능한 많은 지원을 통한 사업의 확장이 더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물량주의의 환상으로부터 탈피하여 개도국 주민들의 주인 의식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변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할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필요의 충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고, 목표를 세우고, 정부에 권리를 주장하거나 협력하는, 의미 있는 과정으로 전환할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넷째, RBA는 기간 시설의 건축이나 소득증대 등의 경제주의적인 접근으로부터 인간의 신체적, 물질적, 정서적, 사회적 발전을 추구하는 통합적(Holistic)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미 존재하는 약속에 대해 지적함으로써, (중략),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애드보커시 도구들을 제공한다 Frankovits씨의 주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드보커시 활동은 기존의 개발 활동이 빈곤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제약이 있음을 인정하고 근본 원인이 되는 법적, 구조적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나 기업 등 권력을 가진 집단을 대상으로 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말한다. 국제적인 조류에 맞춰 한국 개발 사회에서도 점점 애드보커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빈곤에 대한 인권적 관점이 결여된다면 애드보커시는 자칫 기존의 홍보 활동이나 교육 사업을 수사적으로 재포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인권적 접근은 기존의 법이나 제도가 어떻게 인권 규약을 반영하고 있는가, 인권 상황 분석을 바탕으로 정부가 법이나 제도를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구조적 변화를 통한 빈곤의 근본적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위의 많은 부가가치들에도 불구하고 참여, 책임성, 비차별, 가장 취약한 계층(Most Vulnerable Groups), 권력 분석, 역량 강화(Empowerment) 등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RBA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듯하다. ‘너무 어렵다’, ‘너무 오랜 사업 기간과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모금이 되겠는가’, ‘정부와 관계가 경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등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영국의 DFID 30여 개 단체들로 구성된 IAG(Inter-agency Group on HRBA)가 초기에 RBA 적용을 위한 시도를 할 때 가졌던 염려들을 보면 서구 사회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매우 유사한 과정을 거쳐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긴 기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될 지 모른다는 염려, 필요(Needs) 충족에 대한 의무를 간과하게 될 수 있다는 오해(RBA는 필요의 충족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역량강화(empowerment)에 집중하지 않고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초기적 사고로 회귀하려는 경향, 비용효율성 때문에 RBA가 확대되기 어려우리라는 회의론 등이 그것이다.[5]

 

하지만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럼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제대로 할 의지가 없는데 왜 이 일을 하려 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건가? 정말 성장하는 산업을 놓치기 아까운 것인가? ‘좋은 뜻으로 도와주려 하는 것인데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식으로 타인의 존엄한 삶을 놓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가? 물론 All or Nothing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무책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적어도 그러한 비전을 가지고 조금씩 준비를 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고 함께 고민하고 씨름했으면 한다. 어렵다고 포기하고 쉬운 길만 택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업의 성장을 위해 우리에게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것이다.

 

오히려 기본적인 준비도 잘 안된 상황에서 자금만 충분하다면 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식의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한국 개발사회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이러한 현실인식에 동의하고 자성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오히려 RBA는 우리에게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서방세계가 지난 50년 동안 2 3천억 달러를 해외 원조에 쏟아 부었는데도 여전히 개도국의 절대빈곤층의 수는 줄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6] RBA는 서구사회가 걸었던 수십 년의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지 않고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다. 빈곤의 증상만을, 그것도 지엽적으로 제거하는 현상적인 접근이 아니라 빈곤의 근본원인이 의도적인 차별과 박탈의 결과라는 인식으로 관계와 권력의 분석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의 분석을 시도할 수 있다. 필요가 결핍된 연약한 자가 아니라 당연히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할 권리가 박탈된 자로서, 의무를 지닌 국가와 국제사회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권리를 충족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을 시도할 수 있다. 나아가서 ‘우리가 많은 일을 했다’ 가 주된 관심이 아니라 개도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의미 있는 변화의 과정에 동참하고 기여할 수 있는 비약과 혁신의 기회를 RBA가 제공해 줄 수 있다면, 막연히 ‘해나가면서 나아지겠지’ 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행착오의 길을 가지 않고 진정하고 의미 있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렵고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라도 한국의 개발 사회가 함께 공부하고, 배우고, 시도하는 수고를 기꺼이 투자해볼 의미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1986년 발전권 선언이 채택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비로서 발전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싹이 트고 있는 느낌이다. “문제는 어떻게 발전권을 운용할 것이지,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어떻게 빈곤, 인권, 개발 사이의 연결 고리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인지 이다.” 라는 Frankovits씨의 언급처럼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이고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RBA) 현 상태를 점검하는 인권적 상황 분석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분명하고 도달 가능한 목표들과 실행 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는 지표들이 규명될 수 있다”(Frankovits). 인권적 접근은 국제 인권 규약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점과 방향을 설정하도록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실천 가능한 일차적인 목표 설정도 명확해진다. 무엇이 문제이고(어떠한 권리가 침해되어 있으며 무엇이 근본원인 되는가, 누가 가장 침해를 받는가 등), 누가(의무자)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어떻게 인권을 존중, 보호, 이행할 것인가) 등을 명확히 규명하는 기준이 되는 국제적인 인권기준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우선은 그 동안 서구가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만들어 놓은 국제적 인권기준들을 공부해서 따라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빈곤이라는 현상 대신에 사람과 삶이 가장 중심에 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하고 자신들의 삶을 발전시키는 의미 있는 변화과정에 기여하는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여전히 개선 과정에 있는 인권규약들의 발전을 위해서 한국사회가 기여할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와 경제 자유화의 경향은 막을 수 없는 것이고, 시장의 효율성과 성패가 유일한 기준이 되는 경향 역시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는 매너리즘과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듯하다. 자신들은 모두 보호무역을 바탕으로 발전을 이룩해 놓고서 이제 사다리를 걷어차고서 공정한 게임을 하자고 하는 부국과 국제 금융기구들의 이데올로기와도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세계화의 팽창으로 한 쪽 극단으로 내몰리며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도 인식하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는 수십억의 주민들을 옹호하고 지구촌 시민사회와 연대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만일 정말로 세계화가 윤리적 공백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면, 국제 인권체계는 그러한 공백을 없앨 수 있는 수단들을 제공해 준다.”는 말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이말에 우리는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귀한 기회를 한국사회에 제공해준 BASPIA에 감사 드리고, 현재의 이러한 노력이 한국 개발사회가 지구적인 시민사회의 연대와 개도국 주민들의 삶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나비효과의 작은 날개짓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 From the Right to Development to the Rights-Based Approach, Development in Practice, Peter Uvin, 2007

[2] 나쁜 사마리아인, 장하진, 2007

[3]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의 선교사업, 종순, 2006

[4] Development as Freedom, Amartya Sen, 1999

[5] The Impact of Rights-Based Approach to Development, UK IAG on HRBA, 2007

[6] White Man's Burden, William Easterly, 2006

Posted by BAS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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